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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솔낚시마트 최주식 고문
2010년 05월 2850 996

INTERVIEW 

 

 

다솔낚시마트 최주식 고문

 


 

 

“떡붕어 자원 활용하면 침체된 낚시업계 활로 열어줄 것”

 

 

서성모 기자 blog.naver.com/mofisher

 

다솔낚시마트 최주식(63) 고문은 우리나라의 떡붕어낚시 붐을 이끌어온 인물이다. 그는 마루큐떡밥을 수입·유통하고 있는 도매상으로서 전층낚시의 도입과 확산에 앞장섰다. 우리나라의 떡붕어낚시는 어떻게 발전해왔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최주식 고문을 경기도 분당의 본점 매장에서 만나 그에 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다솔낚시마트 주최 낚시대회에서 참가객들 앞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최주식 고문. 그는 우리나라 떡붕어낚시 붐을 이끌어온 인물이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 회사에 나오는 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봄이 되니까 이것저것 챙겨야 할 일이 많이 생기네요. 지방의 낚시점들을 방문하고 다른 사업 아이템도 구상해보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요즘은 4월 18일에 열릴 마루큐 춘계대회 장소를 물색하느라 낚시터 조황을 체크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25일 일본 마루큐사 100주년 행사에 다녀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00년이라니, 대단한 역사가 아닐 수 없군요.
- 일본의 마루큐사는 1910년에 창립된 회사입니다. 비료, 식용유 쪽 수출사업영역을 확장하다가 1967년에 낚시용 떡밥을 처음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떡붕어낚시 역사가 87년인 걸 보면 마루큐사 창립 100주년은 의미가 깊다 하겠죠.
마루큐사는 어느 정도 규모의 회사이고 세계적인 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었습니까?
- 마루큐사는 낚시용 미끼를 만드는 회사로서 세계에서 가장 크고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글로벌 기업입니다. 연간 매출액은 700억원에 이릅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과 대만 홍콩 프랑스 호주 러시아 영국 등 10개국에 지사가 있습니다. 마루큐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신소재 미끼의 개발과 철저한 품질 관리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 본사엔 석박사 학위의 연구원 10명이 제품 개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떡밥의 재료를 수입할 때엔 한 곳에서만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곳에서 수입해 품질을 비교한 뒤 가장 질 좋은 재료를 사용해 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마루큐의 히트작인 글루텐떡밥은 어떻게 개발됐습니까?
- 글루텐은 떡밥에 들어가는 성분 중 하나입니다. 끈끈해서 결착 기능이 뛰어난 재료입니다. 바늘에 오래 달려 있을 수 있도록 개발한 것이 글루텐입니다. 글루텐은 물속에서 솜뭉치처럼 부풀어나고 바늘에 잔심이 끝까지 남아 있습니다. 마루큐사는 1967년 오헤라 아까헤라를 출시한 후 글루텐떡밥의 시조격인 헤라구루쓰를 생산했습니다.

 

일본의 떡붕어낚시 산업은 정체 상황

 

일본의 떡붕어낚시 산업 상황은 어떻습니까? 루어낚시가 강세라고 알고 있는데 떡붕어낚시는 퇴조하고 있는 게 아닙니까?
- 일본의 떡붕어낚시 산업은 물론 성장세는 아닙니다. 들쭉날쭉한 가운데 작년에 약간의 신장세라고 하더군요. 일본도 국민 소득이 높아지면서 취미가 다양화되고 다변화하고 있어서 예전과 같은 낚시산업의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캠핑이나 가족여행이 낚시를 대체하고 있는 겁니다. 루어낚시 인구가 많긴 하지만 떡붕어낚시에도 젊은 층의 유입은 꾸준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작년에 마루큐떡밥은 한동안 국내 수입이 어려웠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 작년에 그 문제로 사업을 거의 펼치지 못했고 마음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그에 대해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직 남아 있어 세세하게 얘기할 단계는 아닙니다.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쨌든 지금은 마루큐떡밥이 정상적으로 수입되어 공급되고 있습니다.
올해 다솔낚시마트의 사업 운영 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 요즘은 소매의 대세가 쇼핑몰 쪽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물건을 앉아서 구입하려는 게 큰 흐름입니다. 매장 매출보다는 쇼핑몰 매출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어서 쇼핑몰 사업에 신경을 많이 쓸 생각입니다. 금년엔 두세 차례 일본의 명인을 초청해 강좌를 열고 초보자를 위한 낚시강좌와 중급자 이상을 대상으로 좌담회식 강좌를 병행해서 개최할 계획입니다.

다이와와 은성사에서 기술력 쌓은 릴 전문가

최주식 고문은 1948년 서울 궁정동에서 4남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집안은 넉넉한 편이어서 큰 어려움 없이 자랐다. 중학교 때부터 동갑내기 이종사촌과 함께 버스를 타고 수원 서호나 의왕 백운지로 낚시를 다녔다. 고등학교 졸업 후 군에 입대한 그는 제대 후 직장을 알아보다가 신문에 난 구인광고를 보고 입사시험을 치렀는데 그곳이 한국다이와주식회사(이후 태양공업, 반도스포츠, 바낙스로 회사명이 바뀜)다. 1972년 입사한 회사가 그가 낚시와 인연을 맺은 계기가 됐다.
“당시엔 박정희 대통령의 주도 하에 한창 산업경제화의 바람이 불던 때였어요. 구미에 대규모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외국의 회사를 유치했죠. 그중 하나가 바로 낚시용 릴과 골프 장비를 생산하던 다이와였습니다. 저는 입사해서 세 달간 일본에서 기술연수를 받고 릴 조립 공정에서 일을 했습니다.” 
9년간 한국다이와주식회사에서 근무하면서 기술력을 쌓은 그는 1981년 은성사에 스카우트되어 릴사업부장을 맡았다. 당시 은성사는 세계적인 낚시 브랜드인 세익스피어에 OEM 생산 납품을 하고 있었다.
“당시엔 낚시산업이 수출효자산업이었어요. 세계 각지에서 항공기를 탄 바이어들이 땅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김포공항에 모두 착륙한다고 할 정도로 수출 물량이 밀려들었습니다.”
5년간 은성사에서 근무한 최주식 고문은 회사를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와 동대문운동장 맞은편의 은성낚시 전시장을 인수했다. 사업은 날로 번창했다. 당시는 충주호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때. 그는 일본으로 눈을 돌려 낚시용품을 수입하기 시작했다. 이때 은성사에서 인연을 맺은 마루큐 대리점 운영자 도야마 신고씨를 통해 마루큐사와 인연을 맺게 된다. 첫 수입품은 마루큐사의 바이오웜이었다. 1992년 도야마 신고씨의 도움으로 마루큐떡밥을 수입하게 됐다.  마루큐사가 본격적인 한국 진출을 시도한 것은 다음해의 일이다.

98년 반월지의 호황으로 시작된 떡붕어낚시 붐

“처음 글루텐떡밥을 보고는 아, 이거 붕어가 잘 먹겠다 싶더군요. 일본의 관리낚시터에서 직접 써보니 붕어가 잘 낚이더군요. 곡물떡밥은 우수수 풀리면 빈 바늘인데 글루텐떡밥은 바늘에 끝까지 남아 있어 붕어가 잘 낚였습니다.”
그러나 마루큐떡밥에 대한 낚시인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평소 친분이 있던 도매상들도 물건을 받아주지 않아 최주식 고문은 직접 소매점 영업을 뛰었다. 마루큐의 감성돔 집어제인 치누대장이 몇 년간 반응을 보였지만 저렴한 국산품이 등장하면서 경쟁력을 잃었다. 민물용 떡밥은 아예 창고에서 먼지만 쌓여갔다. 
“쥐한테 공양을 많이 했죠. 거래처에 200만원어치 물건을 줬는데 1년 후에 198만원어치를 반품 받았습니다. 2만원이 매출이었어요. 그렇게 5년이 지나고 나니까 나중엔 포기할까 생각도 들더군요.”
그렇게 냉대받던 마루큐떡밥이 낚시인들에게 관심을 끌기 시작한 시기는 1997년. 한국국제낚시박람회에 부스를 설치한 최주식 고문은 대형 수조를 설치하고 글루텐떡밥의 물속 풀림을 관람객들에게 직접 보여주었다. 바늘에 오래 달려 있는 글루텐떡밥은 낚시인들의 관심을 모았다. 다음해에 군포 반월지에서 떡붕어 호황 사태가 났는데, 이것이 글루텐떡밥의 효과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최 고문이 상층 가까이 떠오른 떡붕어를 전층낚시와 글루텐떡밥으로 타작하면서 그 소문이 금세 퍼져나갔다.
“그 전까지만 해도 사실 글루텐떡밥이나 중층낚시 기법으로 붕어를 잘 낚지 못했어요. 그런데 반월지 사장님이 붕어가 수면 가까이 떠있다고 하기에 채비를 수면 가까이 띄웠더니 붕어가 잘 낚이는 겁니다. 그때 무릎을 탁 치면서 이게 중층낚시의 위력이구나 생각했습니다. 당시 상황과 채비, 떡밥을 A4용지 두 장에 깨알같이 써서 거래점 100군데에 보냈더니 반응이 오더군요. 직접 낚시를 해보니까 과연 재미있다고. 그때 깨달았습니다. 낚시인들은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이 직접 효과를 느끼면 배우려 한다는 것을.”
그 뒤 최 고문은 전국을 돌면서 순회 강좌를 열었다. 이 과정에서 ‘일본 기법을 뭐하려 소개하느냐’며 반발이 심했지만 적극적으로 배우려는 낚시인들도 적지 않았다.
“그때 원로낚시인이신 송소석 선생님, 월간낚시 이종호 기자, 주간낚시인 신정환 주간이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지금도 그분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1999년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전층낚시 붐이 일면서 마루큐떡밥의 매출은 급상승했다. 그 전까지 1년에 한 박스도 나가지 않던 GTS 제품은 2천 박스나 팔려 나갔다. 전층낚시 인구는 급증했고 떡붕어는 새로운 낚시대상어종으로 인식되었다.

 

▲본점 매장에서 최주식 고문이 이웅기 전무이사(우)와 의견을 나누고 있다.

 

“일본식 낚시용어는 우리말로 바꿔 써야”

 

떡붕어낚시 붐이 일면 수입품만 잘 팔리고 국내 산업엔 도움이 안 된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 그것은 지금 떡붕어낚시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이유가 큽니다. 일반 낚시인들이 떡붕어낚시를 배우려고 했다가 고가의 장비 때문에 위화감을 느껴 포기한다고 하더군요. 떡붕어낚시는 지금 사용하고 있는 낚싯대에 채비만 바꿔서 해도 충분히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낚시입니다. 요즘은 국산 낚싯대들이 빳빳한 중경질대가 많더군요. 그런 휨새라면 떡붕어를 낚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떡붕어낚시가 고가의 낚시장르로 비쳐서는 업계에 있어서도 전혀 도움이 되질 못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대중적인 낚시로 이끌 마케팅이 필요한데 낚시춘추가 그런 역할을 해주길 기대합니다.
낚시인들이 떡붕어낚시를 배우려 할 때 ‘초친’이나 ‘소꼬츠리’ 같은 일본용어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고 어려워합니다.
- 중요한 지적을 하셨습니다. 저를 비롯해 헤라스쿨 강사들은 일본의 낚시용어를 우리말로 바꾸려는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가령 ‘나지미’라는 용어는 찌가 떡밥의 무게 때문에 가라앉는 과정을 말한 것인데 ‘목내림’이라고 고쳐 쓰니까 개념이 머리에 쏙쏙 들어오더군요. 지금 많이 퍼져있는 일본식 낚시용어는 조금 시기가 늦은 감이 있지만 우리말로 하루빨리 순화해야 합니다.
같은 얘기일 수 있습니다만 마루큐떡밥 포장지는 모두 일본어 표기로 되어 있습니다. 한글 포장지 제품을 만들거나 한글 스티커 작업을 하실 생각은 없습니까?
- 국내에 수입되는 떡밥의 양이 많고 종류가 워낙 다양하다 보니 그게 쉽지 않습니다. 그동안 일부 떡밥은 한글을 표기한 제품을 생산하기도 했습니다. 저희 필드스탭들도 비슷한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한글카탈로그를 제작해서 배포하고 있는데 한글화 작업에 대해선 다양한 방법을 찾아 검토해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떡붕어낚시 시장과 트렌드를 선도한 다솔낚시마트의 입장에서 앞으로 그리고자 하는 큰 그림은 무엇입니까?
- 떡붕어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지 38년이 됐습니다. 이 정도면 떡붕어는 귀화어종이 됐고 또 토착화됐습니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떡붕어에 대한 거부감이나 반감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떡붕어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전국에 퍼져 있습니다. 토종붕어 자원은 점차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자원이 풍부하게 남아 있는 떡붕어는 우리가 육성 발전시켜야 할 낚시자원이라고 봅니다. 누구나 쉽게 가까운 곳에서 즐길 수 있는 대상어로서 낚시인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업계 역시 시선을 돌려야 한다고 봅니다. 다솔낚시마트는 떡붕어낚시의 대중화를 위해 계속해서 노력해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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