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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HDF해동조구사 정연화 대표 토종 브랜드의 자존심을 지켜나간다
2020년 03월 1341 13128

 

인터뷰

 

HDF해동조구사 정연화 대표

 

토종 브랜드의 자존심을 지켜나간다

 

이영규 기자

 

 

종합낚시용품업체이자 대표 토종 브랜드인 HDF해동조구사(이하 HDF)는

지난 1982년 3월 ‘해동화학’이란 이름으로 낚시업계에 등장했다.

현재 국내 최다 품목인 5,500여 개 낚시용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2001년에 갯바위낚시 브랜드 카리스마, 2011년에 루어낚시 브랜드 피나투라를

론칭하며 굴지의 종합낚시용품업체로 우뚝 섰다.

지난 1월 20일 부산 수영구 망미동의 HDF 본사에서 정연화 대표를 만나 회사의

성장 과정과 경영 철학, 향후 운영 계획을 들어 보았다.

 

 

인터뷰를 마친 HDF 정연화 대표가 특유의 온화한 미소를 띠며 사진을 찍었다. 1982년에 낚시업계에 뛰어든
정연화 대표는 HDF를 세계적인 토종 브랜드로 키워냈다.

 

 

낚시춘추의 정연화 대표 인터뷰는 이번이 두 번째다. 첫 인터뷰는 26년 전인 1994년 3월 무렵이었다. 인터뷰를 담당했던 사람은 낚시춘추 편집장을 역임한 김중기 기자다.
기사의 제목은 ‘중소메이커 탐방, 낚시 小品類 종합메이커 野望 키우는 海東釣具社’. 해동화학이란 이름으로 출발한 회사가 만 10년 만에 해동조구사로 사명을 바꿀 시점에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열정 어린 표정의 43세 정연화 대표는 자사의 성개꽂이 채비를 한 손에 들고 카메라에 섰다.
그리고 26년이 흐른 현재, HDF는 한국을 대표하는 종합낚시용품업체로 성장해 외국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1982년 해동화학으로 출발, 갯바위신발이 주 생산품 
정연화 대표는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 때 부산으로 이사해 줄곧 부산에서 산 부산 토박이다.
가장 최근에는 (사)한국낚시협회 공동회장을 작년까지 역임했으며 현재는 부산시낚시경영자협회 고문, 부산낚시협회 고문을 맡고 있다. 
사장실에 들어서자 벽에 걸린 각종 기념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정 대표가 30여 년간 흘린 땀과 열정의 발자취들이었다. 본격 인터뷰에 앞서 HDF의 초창기 얘기로 분위기를 띄웠다.
1982년, 해동화학이 낚시계에 처음 등장했을 때 생산한 주요 품목은 갯바위신발, 계류화, 민물낚시용 장화 등이었다. 낚시신발이 주 아이템이 된 것은 정연화 대표가 신발업체에 근무했기 때문이다.
당시 국내에 유통되던 낚시신발, 특히 고급 갯바위신발은 일제가 점령 중이었는데 낚시가 취미이자 신발 전문가인 그의 눈이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갯바위신발만큼은 자신 있었습니다. 내가 낚시를 아니까요. 당시만 해도 만족스러운 국산 갯바위신발이 없던 때라 디테일만 살리면 시장성도 좋아 보였습니다.”

 

국산 낚시 소품의 규격화, 브랜드화 주도
해동화학 설립 후 가장 먼저 서두른 일이 일산 갯바위신발의 해부였다. 일산 갯바위신발은 외부로는 한 개의 핀만 돌출돼 있었지만 지지력을 높이기 위해 고무 안쪽에는 철심이 ㄷ자로 연결돼 있었다. 당시 국내에는 그런 핀을 만드는 업체가 없었다.
정연화 대표는 연구 끝에 우리 지형에 맞는 토종 핀 개발에 성공했고 뛰어난 가성비를 바탕으로 갯바위신발 분야에서 독보적 업체로 성장하게 된다(이후 히프커버, 소품 케이스, 낚시모자 등을 속속 출시했다).
본격 소품전문업체로 변신을 시도한 것은 10여년 뒤인 1994년부터다. 1월 15일자로 해동화학에서 해동조구사로 사명을 바꾼 뒤 낚시 소품 생산을 더해 사세를 확장했다. 낚시인들은 이때를 국산 낚시 소품이 규격화, 브랜드화된 시기로 보고 있다.
이전까지만 해도 봉돌, 도래, 찌구슬 등의 소품류는 대부분 허접한 디자인의 포장지에 담겨 판매됐고 가격도 제각각이었다. 그러나 해동조구사에서 산뜻하고 세련된 디자인의 포장지에 규격화된 소품을 담아 판매하면서 국산 낚시 소품의 고급화가 시작됐다는 평이다.
이 당시 정연화 대표는 부산 만어낚시(현 주식회사 만어)의 안승근 회장, 은성낚시마트(현 다솔낚시마트)의 최주식 고문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밝혔다. 일본어에 능통하고 한일 낚시 여건에 해박했던 두 어른으로부터 어떤 품목이 상품성이 있는지, 국산화할 경우 어떤 제품이 일산 제품과 경쟁력이 있을지 등에 대해 값진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타이밍도 잘 맞아떨어졌다. 90년대 초중반은 국내 바다낚시의 중흥기였으며 구멍찌낚시 열풍이 불 때였다. 갯바위낚시의 필수품목인 갯바위신발은 물론 구멍찌낚시의 필수 소품인 찌구슬, 도래, 찌매듭, 좁쌀봉돌, 소품 케이스 등이 덩달아 잘 팔렸다. 특히 정밀함을 크게 따지는 구멍찌낚시는 검증되고 규격화된 소품 사용이 필수다. 정밀도 높은 해동조구사의 소품은 일종의 ‘보증수표’처럼 인식됐다.

 

신뢰로 극복한 IMF 위기
이후 3년 가까이 승승장구하던 해동조구사에게도 시련이 닥쳐왔다. 1997년 말에 찾아온 IMF의 그림자를 해동조구사도 빗겨갈 순 없었다. 열정 하나로 회사를 이끌어온 정연화 대표가 맞은 최대 위기였다.
1차 부도를 맞고 휘청대던 해동조구사에게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 납품을 해온 협력업체들이 스스로 지불 유예를 감내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당시의 심정을 정연화 대표는 이렇게 밝혔다.
“협력업체로부터 물건은 받아놓고 대금 지불은 못하니 앞이 캄캄하더군요. 그러던 중 결제를 받기 위해 찾아온 한 납품업체 대표가 해동이 살아야 우리도 산다며 결제 금액을 5백만원이나 탕감해줬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른 납품업체들도 자발적으로 결제 대금을 삭감하거나 미뤄줬습니다. 당시 협력업체들의 지원이 없었다면 지금의 해동조구사는 없었을 것입니다.”
기업가들에게 IMF 사태는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그러나 하청업체에 대금을 지불 못해 도산하는 회사가 넘쳐나던 시절에 해동조구사는 거꾸로 도움을 받았다. 정연화 대표의 진정성, 수년간 협력업체와 쌓아온 신뢰가 없었다면 결코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정연화 대표는 지금도 당시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 그래서 연말이면 가장 중요하게 챙기는 행사가 있는데, 해동조구사 임직원과 협력업체 대표가 한자리에 모이는 ‘해동조구사·협력업체 대표자 초청 송년의 밤’이다. 

 

매년 연말에 열리고 있는 협력업체 대표자 초청 송년회.

HDF 임직원과 협력업체 대표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화합의 시간이다.

 

신의 한 수가 된 카리스마 아이스박스   
갯바위신발이 지금의 HDF를 일궈낸 견인차였다면 2000년대 들어 최고의 히트상품은 카리스마 아이스박스다. 이미 국내 유수 조구업체들이 도전했다 고전하고 고가 제품은 일산이 시장을 잠식하던 와중에 일군 성과라 더욱 의미가 깊은 품목이다.
그런데 개발 초기에는 HDF 내에서도 ‘아이스박스는 흥행이 불확실한 품목’이라는 지적이 있었다고 한다. 다른 용품은 몰라도 아이스박스만큼은 일산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인식이 낚시인과 업체 모두에 각인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연화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가격과 보냉력만 좋다면 왜 소비자가 사지 않겠는가”라고 지적하며 아이스박스 개발을 밀어붙였다. 당시 상황에 대해 정연화 대표는 “일반 업체의 아이스박스는 모양은 번듯해도 낚시용으로는 부족함이 많았습니다. 당일치기 피크닉에 알맞은 보냉력만 갖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낚시인들은 보통은 1박2일, 길게는 2박3일간 낚시를 떠납니다. 당연히 보냉력이 강한 제품을 만들어야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OEM 생산만으로는 보냉력 개선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결국 HDF는 2004년에 기존 중소 아이스박스 업체를 인수했고, LG전자의 냉장고 분야 전문가를 초빙해 자문을 구했다. 그 결과 드디어 특수 우레탄 폼을 보냉재로 사용한 5면 충진 압축식 아이스박스를 개발해냈다. 일산 대비 가격은 30~40% 저렴하고 보냉력도 뛰어난 카리스마 아이스박스가 탄생한 것이다. HDF의 효자상품이 된 카리스마 아이스박스는 현재 12가지 용량으로 세분화돼 출시 중이며 낚시인이라면 누구나 갖고 싶어하는 낚시용품으로 자리 잡았다.
낚시용품 국산화에 대한 정연화 대표의 신념은 2000년 무렵, 일본 소품업체의 대리점 요청 건에서도 잘 드러난다. HDF의 인지도와 폭넓은 영업망을 눈여겨 본 일본의 유명 소품업체가 대리점 계약을 요청했지만 정연화 대표는 자본금이 없다는 핑계를 대고 계약을 고사했다.
“1년에 30억원 정도의 매출이 예상되고 순수익만 3억 이상을 낼 수 있는 계약이었습니다. 업계의 지인이 20억원을 보증서겠다고도 했지만 과감히 거절했지요. 지금 생각해도 잘 한 일입니다. 그 덕분에 HDF가 지금처럼 건강하고 자생력 높은 건실한 회사로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낚시박람회장의 HDF 부스에 전시 중인 카리스마 아이스박스.

뛰어난 보냉력과 미려한 디자인으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20여 년 이어온 사회봉사 멈추지 않을 것         
정연화 대표는 지역사회 봉사활동에 있어서도 덕망이 높다. 1994년경부터 매년 100만원 이상의 이웃사랑성금(불우이웃돕기 성금)을 주민자치센터에 전달하고 있다. 2010년에는 연산6동 소재 연제고등학교에 5백만원의 장학금을 기부했다. 2015년에는 흰돌실버타운을 운영 중인 사회복지법인 로사 사회봉사회에 노인복지발전기금으로 1억원을 쾌척했다.
인터뷰를 마칠 즈음 정연화 대표는 기업인이라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활동(CSR)을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인은 돈만 잘 벌어서는 안 됩니다. 번만큼 자신의 물건을 사고 이용하는 사회 전체에 환원할 줄도 알아야 진정한 기업인라고 할 수 있지요. 금액의 많고 적음은 상관없습니다. 직원들도 그런 오너를 존경하며 꿈을 키우게 됩니다. 회사가 저절로 건실해질 수밖에 없지요. 나와 회사의 힘이 닿는 날까지 봉사와 기부 활동을 계속 이어나갈 겁니다.”
지난 38년간 HDF에서 이직한 직원은 10명 안쪽이라고 한다. 1년도 못 돼 이직하는 사례가 빈번한 낚시업계의 속성에 비추어 볼 때 HDF의 현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지난 2015년 3월, 사회복지법인 로사사회봉사회에 노인복지발전 기금 1억원을 전달한 정연화(왼쪽) 대표.

1994년 이후 매년 쉬지 않고 이웃사랑성금을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하는 등 지역사회 봉사와 후원을 지속해 오고 있다.


    
스마트팩토리로 재2의 도약 예고
부산시 연제구 연산 3동에서 첫 발을 띤 HDF는 7년 전 옮긴 수영구 망미1동의 현 사옥에서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직원 수는 정연화 대표를 포함해 총 29명. 회사의 브레인인 정국윤, 박현수 이사와 더불어 정연화 대표의 장남 정민혁 경영전략팀장이 작년부터 합류해 전력을 강화했다.   
HDF는 올해 6월경 양산공단으로 회사를 옮겨 본사 업무와 물류를 통합하는 스마트팩토리로 거듭난다. 스마트팩토리 프로젝트는 삼성SPS에서 수년간 근무한 IT 전문가 정민혁 경영전략팀장이 주도하고 있다.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세 곳에 흩어져 있던 물류창고가 통합된다. 모든 업무가 전산화되는 ERP(통합정보시스템)가 구축되면 더욱 신속하고 유기적인 업무 처리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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